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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① 히스로 공항과 웨스트민스터

나쁜피 2021. 2. 24. 09:54
오른쪽 부터 포트컬리스 하우스(Portcullis House, PCH), 빅 벤(Big Ben), 런던아이(London Eye)가 보인다.

2015년 2월 영국,
히스로 공항(Heathrow Airport)이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불편한 축에 속한다는 악평은 자주 들어 익숙했다. 되려 기대한 게 없어 입국 수속이나 절차가 불편하다는 인상을 받진 못했다. 초강대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초라한 공항시설을 마주하면 기대감 따위 생길 리 만무하다.

 

Term4
영국 여행 당시 이용했던 제4터미널은 규모도 작지만 쾌적함이라곤 눈씻고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쇠락한 도시의 낡은 공항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나라 항공사 중 스카이팀 소속인 대한항공이 입주해 있다. (사진 : Thundernlightning at English Wikipedia,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히스로 공항, 신자유주의의 망령

신자유주의 선봉장이었던 마거릿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 수상이 공항을 스페인 회사에 매각해서 그나마 유지되는 건지, 아니면 더 나빠진 건지? 알 수 없다. 재미난 점은 국적 항공사가 이용하는 제5터미널에 스페인 항공사 이베리아(Iberia)도 입주해 있다는 것이었다. 영국항공(British Airway)이 이베리아와 IAG(International Airlines Group)를 설립해 몸집을 키웠으니 같은 터미널을 써도 이상할 리 없지만, 유럽에서 벗어나겠다며 처절하게 몸부림친 지난 몇 년간의 영국을 떠올리면 코웃음이 절로 나온다.

대처는 유럽의 경제적 협업(EC)에만 관심이 있었지 정치적 화합까지 염두에 둔 유럽연합(EU)에는 회의적이었다. 유럽 출처의 스페인 자본이 히스로 공항에 떠돈다고 한들 결국 대처가 소환한 신자유주의의 망령밖에 더 되겠나. 어쨌거나 2020년부터 미국 항공사도 제5터미널을 쓰고 있다고 하니 이젠 이상할 이유도 없겠다.

 

Interior, Heathrow Terminal 5 (geograph 6066290)
복잡한 공항으로 악명을 떨치던 히스로공항은 2008년에 이르러서야 제5터미널을 신축했다. 다섯 개의 터미널 중 가장 최신 건축물이라 할 수 있겠다. (사진 : Rossographer / Interior, Heathrow Terminal 5)

공항철도인 히스로 익스프레스(Heathrow Express)를 이용해 런던 시내인 패딩턴(Paddington) 역까지 이동할 계획이었다. 사전에 탑승권을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어 편리했다.

'우리 공항철도도 예약이 가능한가? …… 그렇겠지?'

 

온라인에서 탑승권을 구매하면 다음과 같이 전자우편으로 탑승권을 발송해 준다. 바코드를 내려받아 개찰구에서 티켓으로 교환해 입장하면 된다.

내국인 입장이라 우리나라 인천 국제공항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잠깐 씁쓸했다. 예습한 대로 공항의 동선을 복기하며 제4터미널을 빠져나오던 나는 사뭇 다른 처지가 되어 버렸다.

드디어 이방인이 될 준비를 마쳤다.

제4터미널과 제2터미널의 차이

제4터미널 역,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열차를 기다렸다. 설레고 초조했다. 약속 장소에 지각하는 기분이랄까? 여행에서 목적지를 앞에 두고 조급해지는 건 어떻게 통제가 안 된다.

노선도를 보니 제4터미널 역은 본선에 합류되는 지선 격이다. 제5터미널에서 출발한 열차가 제2·3 터미널 역에 정차해 승객을 싣고 패딩턴역으로 향하는 본선처럼 제4 터미널 역발 열차도 제2·3 터미널 역을 경유해 승객을 싣는다. 제2, 3 터미널 이용객들은 제4, 5 터미널 역 양방향에서 출발한 열차를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스카이팀 항공사들이 입주한 제4터미널을 이용한 탓이다. 제2터미널을 이용했더라면 벌써 출발했을 텐데……. 그나저나 다른 터미널을 이용했다고 히스로 공항의 첫인상이 달라졌을까?

 

Heathrow Airport Terminal 2, London, England - Diliff
제2터미널은 2014년 새단장을 마쳤다. 제5터미널과 동일하게 내부를 꾸민 덕에 쾌적하고 안락한 느낌이다. 스타얼라이언스 소속 항공사들이 입주해 있고 우리나라 항공사 중 아시아나 항공이 제2터미널을 이용하고 있다. (사진 : Diliff,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제4터미널 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정치 1번지, 웨스트민스터 시티

저녁 7시를 넘어 숙소인 호텔 콘래드 런던 세인트 제임스(Conrad London St James)에 도착했다. 이곳은 세인트 제임스 파크(St James's Park) 역 앞에 위치해 교통이 편리하고,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 빅 벤(Big Ben),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 등 주요 관광지와 인접해 접근성이 뛰어나다.

 

본 호텔은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만족도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고 비싼 축에 속한다. 영국의 물가수준이 워낙 높아 접근성을 최우선 조건으로 호텔을 선정했는데 이동시간을 최소화해 기회비용을 줄여 보려는 의도였다. 여태껏 묵었던 호텔 중 제일 많은 금액을 지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분명 당시에는 만족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과하지 않았나 싶다. 호텔에 대한 리뷰는 별도로 준비할 예정이다.

체크인을 마치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짐을 내팽개치고 밤거리로 뛰쳐나갔다. 시차와 여독을 잊은 발걸음에 활력이 넘쳤고, 쌀쌀한 밤공기가 달아오른 열기를 누그러뜨려 걷기에 더없이 쾌적했다. 잠깐 걸었을 뿐인데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런던아이가 건물 새로 빼꼼 고개를 내민다. 런던과의 정식 대면이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철도와 지하철을 이용했기에 슬쩍 눈인사만 나눴지 런던과의 정식 인사는 아직이었다.

 

런던 아이, 빅 벤,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보이는 이 거리는 그레잇 스미스가(Great Smith St.)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맨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국왕의 즉위식을 비롯해 국가 주요 행사에 등장하는 장소인만큼 장엄하고 위압적인 기세가 뚜렷하지만, 시답잖은 영국 농담처럼 투박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궁과 세인트 마거릿 교회(St Margaret's Church)를 한데 묶어 하나의 유적으로 등록되어 있다. 특히 웨스트민스터 궁은 현재까지 국회의사당으로 활용되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입법기구의 건축물로 잘 알려져 있다. 궁의 부속 건물인 빅토리아 타워가 1497년 이후 국회의 모든 법안을 포함해 3백만 건의 문서를 소장하고 있고, 왕실 묘지, 사원과 궁의 내부를 빼곡 채운 예술작품들로 "영국의 역사와 의회 및 헌법 제도의 발전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유네스코의 설명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가히 900년에 걸친 영국 입헌 군주제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자 '대영제국의 역사박물관'으로서 미학적 성취를 뛰어넘는 가치를 지녔다.

 

고딕 양식은 직선의 비례로 신성함을 표현한다. 신에게 닿고자 천정을 높이고, '신은 빛이다'라는 신학 논리를 구현하기 위해 창을 내어 스테인드글래스로 장식한다. 교당 내부에 가득한 빛은 영성이다. 뾰족한 첨탑을 얹어 신과의 조우를 희망하기도 한다. 필사적으로 신에게 다가가고자 애쓰는 인간의 욕망이 발가벗겨져 있다. 16세기 라파엘로(Raffaello Sazio)가 프랑스에서 시작된 고딕(Gothic) 양식을 야만인 고트족(Goths)의 취향에 빗대어 깎아내린 연유일 테다.

빅 벤, 안녕! 반갑다, 런던!

사원에서 조금만 이동해도 웨스트민스터 궁의 부속 건물인 시계탑 빅 벤을 만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자명종 시계를 품고 있는 시계탑의 본명은 '엘리자베스 타워(Elizabeth Tower)'지만 건축 담당자인 벤저민의 거구에서 비롯되었다는 '빅 벤'이란 별명이 더 유명하다.

거구는 거구다. 약속시간보다 미리 도착해 상대를 기다리는 과묵한 신사 같다. 손을 높이 들어 흔든다. 처음 뵙는다고, 반갑다고, 잘 부탁드린다고. 그제야 난 런던과 정식으로 인사를 마쳤다.

 

마주하는 순간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각인돼 버리는 빅 벤의 외관은 마치 재미난 이야기보따리를 가진 재주꾼처럼 다양한 정서와 서사를 지녔다. 강 건너에서 봐도 강 위에서 봐도 그때마다 여러 정서를 자아낸다. (가운데 사진 : Diliff,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피곤하고 시장할 때가 다 됐는데, 템즈강 건너편에 런던 아이(London Eye)가 인사를 건넨다. 잠시 허기에 갈등하다 저녁 식사 따위는 접어두고 발길을 돌렸다.

밤은 길다, 걷자!

 

[2부에서 계속]